나카지마 다카시・中嶋隆(55)
기업문화, IT산업, 지적재산권 전문의 경제학 연구인
일본인 출신 서울대학교 유학생 1호. 유창한 한국어 구사.
성나연이 소속되어 있는 NHN Japan 게임비즈니스 사업부 부부장 나카지마 히카루・中嶋光(40)의 남편
성나연・成奈妍(28)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학부・대학원졸업
최근 일본인 애인과 결별 후, 섬세한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을 만나 거꾸로 자기를 가늠하고자,
소속사업부 부부장인 나카지마 히카루 씨에게 부탁, 나카지마 다카시 씨를 만남.
[일본인 출신 서울대학교 유학생 1호의 유래]
나카지마 다카시 : 호오. 나연짱이 같은 학교출신이라고 해도 뭐,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냥 히카루가 회사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온적이 없었기 때문에, 별일이다 싶었죠.
음, 내가 한국에 유학하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구나. 우리 아버지는 만주에서 학교를 다니셨거든요. 그 학교에서는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같이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한국어 모두 구사하실줄 아셨구요. 그 당시에도 한국인들은 머리가 좋고, 열의가 넘쳐서 학교에서 1,2등은 늘 한국인이었는데, 자연스레 우등생인 우리 아버지와도 친하게 지내셨다고 합니다. 선배들한테 두들겨 맞을때는, 같이 맞아 줄 정도로 의리가 남달랐다고 해요. 그 1,2등 하던 친구 두명이 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수석 비서관과 농림부장관이 되어서 일본에 방문하면서 다시 아버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한국에서는 원래 김을 안 먹었어요. 아버지가 재회하게 된 친구들에 이끌려 한국에 가셨을때, 김을 걷어서 버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해요. 일본에서는 김을 판에 말려서 종이처럼 만들어서 먹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한국에서도 김을 버리지 말고 종이형 김을 만들어서 일본에 팔면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냐고, 농림부장관인 친구에게 제안을 하신거에요. 일본에서 종이형 김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곳은 도쿄의 아사쿠사와 큐슈 두 군데에요. 우리 집안은 큐슈 출신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큐슈의 김 제조 기술과 기계를 한국에 전해주면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한국인 열 몇명이 큐슈에 와서 김 만드는 기술을 배워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김 산업이 시작된거죠.
나카지마 히카루 : 그러고보니 작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을때 유품 중에 한국에서 받은 ‘농림부 장관상’ 상장이 툭 튀어나와서, 어라. 이게 뭐야 했었지-
나카지마 다카시 : 그런데 한국의 김 제조에 관련된 사업을 하시면서, 아버지가 얻으신 이익은 크게 없었다고 해야 하나요. 왜냐하면 전부 원으로 지불받았거든요. 그 당시에 원은 너무 가치가 낮아서 엔으로 바꿀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에이, 뭐 친구 도와준거지 하시면서 그 돈으로 한국에서 옷, 과자, 쌀 같은 것들을 구입해서 고아원에 나눠주셨대요. 그래서 굉장히 희한한 일본인 취급을 받았다나봐요. 그걸 보고 수석비서관인 친구가 굉장히 미안해 하면서 대신, 네 아들은 우리가 책임지겠다. 서울대학교로 보내라. 하고 제안하셨대요. 저는 도쿄대학에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아버지가 야. 너 내일 서울 가라. 하셔서 깜짝 놀랐었어요. 그 당시 선생님, 친구들이 굉장히 의아해 하던게 기억이 납니다. 유학도 드문 시절이었고, 게다가 서울로 유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 취급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만주의 학교에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타문화, 타언어, 타민족을 이해하는 일의 중요함을 이해하고 계셨던 아버지셨기에, 주저없이 저를 서울에 보내신거였죠.
[서울대학교에서 배운 것]
나카지마 다카시 : 그 당시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정말로 대단했어요. 아침부터 마지막 버스가 다닐 때까지 공부를 조금도 쉬는 법이 없었거든요. 늘 도서관은 만원이었고, 수업이 없으면 청강을 하곤 했어요.저는 청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교수의 수업은 천하일품의 수업이니까, 꼭 들어야 한다.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수업도 아닌 수업에 들어가는 거에요.
서울대학교의 전신은 제국대학교였으니까, 도쿄대학에도, 쿄토대학에도 없는 제국시절의 문서들이 서울대학교에는 있었거든요. 저는 그것들을 제 머릿속에 집어 넣어두어야겠다는 의무감에 도서관에 늘 있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안을 자세히 보니 제 친구들이 모두 남아서 여기저기에서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15년 안에는 일본에 지지않는 훌륭한 나라를 만들거니까 기다려! 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나중에 따져보니 그 친구들은 4년동안 16년치의 수업량에 해당하는 공부를 했더라고요. 그 정도로 당시의 서울대학교는 치열하고 뜨거웠습니다. 최근 서울대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포르쉐나 BMW를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과거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 놈들, 대체 뭐하는거야! 싶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사건이 벌어지고, 대통령 최측근들이 줄줄이 의문사하는 중에, 저를 돌봐주시던 수석비서관도 갑자기 암살당했습니다. 불안했죠. 그러던 터에 3학년때 아버지의 사업이 도산하시는 바람에, 중간에 유학을 그만두고 일본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 돌아와서는 츄오대학에 다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배운 ‘청강’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교수별로 수업의 가치를 평가해서, 이 수업은 훌륭한 수업이니까 꼭 듣자. 하는 ‘츄오 미슐랑’을 발행한 것이 저였습니다. 엄청나게 팔렸죠.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요.
[성나연]
성나연 : 저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설계사무소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생각해왔던 새로운 발견과 앎이 넘치는 건축과 현장에서의 건축은 차이가 있더라구요. 새삼 제가 무엇을 위해 건축을 지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한국이라는 바운더리 내에서 정의된 건축과 다른 형태의 건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발견했던 것이 ‘무인양품의 주택사업’ 이었습니다. 건축주가 정의한 예산과 취향 내에서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하는 통상의 과정과는 달리, 디자인 스스로가 자신의 형태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결정하고, 시장에 나와서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행보가 신선했어요.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은 사진과 도면 이외에, 일본어로 된 텍스트밖에 없었거든요.
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어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생각들, 사물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 언어로만 만날 수 있는 세계가 독창적이고 훌륭해서, 일본어는 참 좋은 언어구나, 배우기를 잘했다 했죠. 그리고 나서 결정했습니다. 아직 젊으니, 닫힌 공간에서 매일 도면을 그리고 있는 생활보다는 더 큰 세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설계사무소를 그만두고 일본에 왔습니다. 일단은 제 인생에서 ‘건축’이라는 주제보다는 `넓고 열린 배움’이라는 과정을 선택하기로 한거에요.
나카지마 다카시 : 호오 호오. 그러면 앞으로 일본에서 주욱 살게 될 것 같나요?
성나연 : 처음엔 일본에서 3년, 그리고 또 다른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건너왔어요. 그런데 일본인 남자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일본 속에 들어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3년은 커녕, 평생있어도 잡히지 않는 세계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욱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해요. 하지만 깊이가 깊어질수록 한국과 일본간의 미묘한 상식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남자친구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 같은 부분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어요.
나카지마 다카시 : 나연짱. 나라는 없어요. 민족도 없습니다. 오로지 개인이 있을 뿐이죠. 나연짱이 겪은 건 나라의 상식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간의 소통의 실패의 문제일거에요.
[과거를 안다는 것]
나카지마 다카시 : 일본은 부끄럽게도, 과거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되어,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생각해보세요. 어떤 민족이든 아프리카까지 거슬러 올라갈때까지 고유의 과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몽고로 거슬러 올라간다던지. 그런데 일본만, 어디에서 왔다. 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일본에 있었다는 특이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분명히 인류든 문화든 일본섬까지 오게되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기 마련이거든요. 일본의 천황일가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황무천황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지만,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성덕태자나 히미코의 이야기가 메이지유신 때, 단일한 국가의식을 만들기 위해 만든 수상한 근거 투성이의 거짓이야기라는 건 다들 눈치채고 있어요. 우리를 둘러싼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해가 확고한 한국이 부럽습니다.
성나연 : 그런가요. 사실 저는 역사에 무관심한 편이거든요. 역사를 아는 일이 저한테 어떤 의미를 갖는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카지마 다카시 : 그건 인간에 대한 관심의 문제인거죠. 지금의 자기가 있기까지의 과정,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무심한 사람이 인간에 관심을 갖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가까운 사실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도 확고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때, 자신의 과거조차도 모르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겠죠. 제가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 알기 시작한 것도, 그런 생각의 실천에서 비롯되었어요. 나의 역사,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의 역사, 그리고 그 가족이 속한 일족의 역사, 일족이 속한 민족의 역사, 민족이 속한 나라의 역사. (그리고, 나라들이 속한 인류의 역사.)
자신과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리고 나서 상대방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세요. 그건 분명히 상대방에게 놀라운 일이 될겁니다.
[언어]
나카지마 다카시 : 자, 이제 나연짱도 돌아가야 하니, 마지막으로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접하는 나연짱의 감상을 듣고 싶은데!
성나연 : 언어란게 사물을 만지고, 붙잡는 도구인거잖아요. 그런데 언어에 따라서 그 도구의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사물을 붙잡기 위한 그물같은게 있다고 하면, 그물의 촘촘함이나 짜인 방식이 달라서 사물이 붙잡히는 범위나 방식이 달라지잖아요. 그런 차이를 이해하는 게 재미있는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늘 가지고 있었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게 흥미롭습니다. 일본어과 한국어는 비슷한 사물, 경험, 감정을 붙드는 데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언어들인데요,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사물, 경험, 감정을 다루는 언어를 습득해보고 싶어요.
나카지마 다카시 : 스바라시이- 완전히 동감입니다!! 저의 서울에서의 유학생활의 의미도 바로 그거였어요. 제 나이 열여덟살일 적, 바로 그 이해가 지금까지 이어온 제 인생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언어는 문화와 인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과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에요.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죠. 나연짱, 일본에 잘 오셨습니다!




